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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방송 CH8/프로그램

특집 다큐 '대한민국 역사지킴이 오효정'

 

 

 

9월의 어느 날, 오효정씨의 집을 찾은 제작진.

갑작스레 찾은 제작진을 반겨주는 오효정씨, 선한 웃음이 인상적입니다. 그의 집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사진들. 많은 사연이 담긴 사진 한 장, 그가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역사지킴이를 자처하고 나서게 된 것은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사업차 우연히 들른 중국 길림성. 그곳에서 운명처럼 광개토대왕비를 보게 됩니다. 우리 역사 속 위대한 인물이 너무나도 흉물스럽게 방치된 모습. 마치 우리 역사의 아픔. 그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저렸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광개토대왕비 정비 사업에 두 손을 걷어붙이게 됩니다.

 

광개토대왕비를 새롭게 정비해야겠단 생각으로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실행에 옮긴 오효정씨, 한국에 먼저 들어오자마자 바로 실행에 옮긴 오효정씨는 먼저 중국 측의 승낙을 받아내는 일이 급선무였습니다. 하지만 호락호락 하지 않은 일, 무명의 한국인이 중국 땅에 세워진 거대한 묘역을 정비하겠다고 나서자 중국 측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고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 보았습니다.

하지만 오효정씨는 포기하지 않았고 중국내의 인맥까지 동원해 지안시 관계자들을 상대로 설득에 나선지 1년 만에 승낙을 얻어냈습니다. 그리고 6억 원이란 사재를 들여 광개토대왕비 정시 사업에 들어갔습니다.

 

 

 

오효정씨는 이 일을 위해 1년간 중국 현지에 직원을 상주케 하고 자신도 중국에 머물면서 묘역 정비에 몰두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완성한 광개토대왕비. 광개토대왕비 묘역은 물론 비포장 도로였던 진입로를 콘크리트로 말끔하게 포장하고 비각 출입문과 지붕, 담장을 보수, 묘역 주변은 한국산 토종 소나무를 심어 초라한 묘역을 광개토대왕의 명성에 걸맞게 새롭게 단장했습니다.

그 후로 그가 아니면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을 중국에 사는 강제징병자와 종군위안부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체험을 상세히 기록해 엮은 책, '강제징병자와 종군위안부의 증언' 책을 발간해 배포하며, 다방면으로 역사 지킴이를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이른 아침, 인천 공항. 한 명 두 명 모이는 사람들.

낯익은 얼굴들도 보이는데, 이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모인걸까요? 기자를 비롯해 우리의 역사를 바로 알고 보고 느끼기 위해 모인 들. 모두 함께 중국으로 떠납니다.

 

 

 

중국을 도착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안중근 의사의 기념관이 있는 하얼빈역,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역 안중근 의사 기념. 안중근 의사가 일제 침략의 원흉인 이토히로부미를 처단한 장소입니다. 1909년 10월, 만주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 권총 6발을 쏘아 이토히로부미를 사살하고 민족의 숙원을 풀었던 그, 품속에서 태극기를 꺼내 높이 휘두르며 대한만세를 목청껏 외쳤던 그. 6개월 동안의 옥고를 치르면서도 동양 평화론을 저술하는 등 죽는 날 까지 나라를 걱정했던 그다. 1910년 3월 26일 감옥에서 형장의 이슬로 산화했지만 대한민국 사람들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잊어서는 안될 이름 안중근.

 

 

지난 2014년 1월 19일 개장된 안중근 의사 기념관.

암울한 표정으로 들어서는 사람들. 입장하자마자 가장 먼저 본 것은 안중근 의사의 흉상. 비록 조각이지만 그의 굳은 의지와 신념이 느껴집니다. 중국에서도 안중근 의사는 영웅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영원한 총리로 존경받는 저우언라이 총리는 40여 년 전 안 의사의 거사에 대해 "중국 인민의 항일투쟁은 안중근 의사의 이토히로부미 격살로부터 시작됐다"며 역사적 의미를 높이 평가한 것은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과거 중국의 지도자들도 극찬뿐만 아니라, 현재도 중국인 중에는 항일투쟁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한국이 배출한 안 의사를 영웅으로 평가하고 존경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기념관 내 전시실에는 1920년 안 의사 유족이 상하이에서 촬영한 사진 등 관련사진 90여 점과 안 의사의 유묵 8점, 중국 주요 인사들의 안 의사 추모글 12점 등 110여 점의 사진과 문헌자료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안중근기념관을 뒤로 한 채 향한 곳.

하얼빈에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과 이토히로부미를 총격한 하얼빈 역 외에도 안중근 의사의 숨결이 남은 또 하나의 명소를 찾았습니다. 안중근 의사 유묵비가 있는 조린 공원인데요. 하얼빈 공원에서 조린 공원으로 이름이 바뀐 이 곳. 공원 한 켠에 안중근 의사 유묵비가 눈에 띕니다. 유묵비는 안중근 의사가 여순 감옥에서 쓴 휘호를 옮긴 것입니다. 중국당국에서 정치적 의미를 담은 내용은 비석 안에 담을 수 없게 하여 평범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당시,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 체재했던 시기는 고작 1906년 10월 22일부터 11월 1일까지, 단 11일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의 위대한 업적은 약 2주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평소에도 조린공원을 산책하며 명상에 잠기던 일이 많았다고 하는데,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나라를 걱정하던 안중근 의사의 모습을 떠올려보며 조용히 공원을 걸어보는 오효정씨.

 

안중근 의사는 여순 감옥에서 형을 살다 사형집행 전에 마지막으로 만난 안정근, 안공근 두 동생들에게는 "내가 죽으면 조린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나라의 국권이 회복되면 고국으로 반쟁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안중근 의사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형 집행 후 하얼빈에 묻히기는 커녕, 지금까지도 어디에 묻혔는지 조차 확인 할 수 없습니다.

 

 

 

당일 마지막 일정은 731부대 기념관.

731부대는 일본제국 육군 관동군 소속의 비밀 생물학전 연구 및 개발 기관으로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에 있던 부대입니다. 1932년에 설립, 초기에는 관동군 방역급수부, 동향부대로 불리다가 731부대로 개명했다고 합니다. 당시 삼천여명... 한국인, 몽골인, 러시아인 등의 사람들이 이 곳에 갇혀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을 상대로 잔인한 생체실험이 이뤄진 곳, 실험에는 남녀노소는 물론 임신부까지 동원되었다고 하니 그 잔인함에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 이 중 약 240명이 한국인이었다고 합니다.

 

 

다음 날 아침. 빡빡한 일정이 잡힌 탓에 일찍부터 길을 나섰습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안중근 의사가 재판을 받았던 관동법원. 안중근 의사가 재판을 받은 곳에서 영상물 시청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가 사형 선고를 받았던 곳, 사형선고를 받고도 웃으며 "이보다 극심한 형은 없느냐!"고 당당히 외치신 분...

 

관동법원을 뒤로 한 채 향한 곳은 일아 감옥.

일아 감옥은 천여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주로 한국인, 중국인, 러시아인들이 수감돼 있었다고 합니다. 안중근 의사를 비롯해 신채호 선생, 이회영 선생 등이 수감되어 순국한 곳으로 30년간 2만여 명을 수감했던 곳이며 안중근 의사가 마지막 생을 다한 곳이기도 합니다.

수감자들이 입었던 옷과 고문기구들을 보니 마음이 한 없이 무거워지는 사람들. 그리고 안중근 의사가 사용했던 감방 앞에 발길이 닿았습니다. 어둡고 습한 이곳에서 수감돼 있었을 안중근 의사를 생각하니 가슴이 매여 옵니다.

 

무거운 마음을 남겨둔 채, 윤동주 시인의 생가가 있는 용정으로 향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28세라는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그.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실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고민했던 그. 그의 마음은 서시, 별 헤는 밤... 그가 남긴 시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지린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룽징시 밍둥촌에 있는 윤동주 시인의 생가. 최근 새로 재정비된 윤동주 시인의 생가로, 그가 15세까지 살았던 곳입니다. 하지만 윤동주 시인의 생가임을 알리는 경계석에 쓰인 글씨가 유독 눈에 들어옵니다. '중국조선족애국시인 윤동주 생가'...

 

 

마지막 일정을 위해 연길로 향하는 길.

항일무명영웅기념비로 향하는 길, 오효정씨의 표정이 복잡합니다. 광개토대왕비 정비 후, 항일무명영웅기념비를 직접 만들었던 오효정씨. 일제와의 투쟁에서 전사한 수만 명의 애국지사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였습니다.

36년간의 일제의 통치 아래, 피눈물을 흘려야 했던 우리의 선조들. 하지만 물러서지 않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희생정신, 그들의 숭고한 넋을 우리는 기억하고 지켜가야만 합니다.

 

항일무명영웅기념비를 세운지 10년이 지난 지금, 백두산 관광 코스에서 꼭 지나쳐야 하는 연길시에 위치하고 있지만 이곳을 들르는 국민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 사실에 또 한 번 가슴이 아려옵니다.

이런 사실을 안타까워한 오효정씨는 교육청을 비롯해 진주시에 백두산 관광 상품에 이곳 방문을 포함시켜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해 진주시가 오효정씨의 뜻을 받아들여 관내 여행사에 이곳을 포함시켜줄 것을 요청했고 도교육청에서는 지난 8월 도내 소년소녀 가장의 고구려문화탐방 행사를 통해 항일무명영웅기념비가 세워진 곳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작은 노력들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중국을 경계로 흐르는 두만강을 보며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잃어버린 우리의 역사를 다시 찾아 지키고자 하는 오효정씨. 그를 이어 많은 국민들이 우리의 역사를 바로 잡고 되살려 지켜나갔으면 합니다. 특집 다큐 '대한민국 역사지킴이 오효정' 프로그램은 서경방송 홈페이지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