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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방송 CH8/프로그램

TV인문학 특강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근대과학, 정치, 스포츠 등에 대해 그 목적과 가치를 인간적인 입장에서 규정하고, 인간과 인류 문화에 관한 모든 정신과학을 인문학으로 대중화할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고전문학 중심에서 벗어나 학문과 현 사회의 공통분모를 찾아 나서며 인간의 표현적 예술 가치들을 인문학적 접근을 통해 소개하는 프로그램, TV인문학 특강! 그 첫 번 째 강의는 바로 '인문학이란 무엇인가?'입니다. 정보주 교수님과 함께하는 서경방송 TV인문학 특강을 통해 좀 더 쉽게 풀어가는 인문학을 배워보세요.

 

 

 

요즘 우리 사회에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 두 해 전만 해도 인문학의 위기란 말이 있어서 참 걱정스러웠는데, 많은 분들이 최근에 인문학에 대해 관심을 가져서 다행입니다. 이러한 갑작스런 관심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대체로 우리의 삶이 너무 기계적이고, 계산적이고, 물질적이라는 반성이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고, 그런 점에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런 관심이 한 때의 유행처럼 그냥 지나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TV인문학 특강이 앞으로 여러 학자들을 모시고 인문학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이고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문학 이외의 여러 학문과 또는 영역들이 인문학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고 또 우리의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전문가들과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인문학이란?

인문학이란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학문의 영역을 표시하는 말입니다. 자연과학, 의학, 공학, 사회과학 등 다양한 학문의 한 분야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이 인문학에 포함시키는 학문들에 있어서는 서로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일단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인문학은 여러 학문들을 분류하는 표지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인문학의 유래는 어떻게 될까요? 먼저 개념적인 면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인문학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이해가 더 쉬울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인문학의 개념을 사전적으로 정의하면, 인간과 인간의 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학문 분야입니다. 인문학은 영어로 'humanities' 서양에서 온 말입니다. 즉, 옛날부터 동양에서는 원래 인문학이란 없던 말이지요. 서양에서 들어온 학문의 분류법을 들여와 대학에서도 강의하고 있는 것이죠.

서양의 전통 인문학을 보면, 그리스 로마 시대까지 올라갑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는 서양에서 빼먹을 수 없을 만큼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아주 중요한 역사적 역할을 합니다.

 

고대 그리스에는 '파이데이아'라는 개념으로 쓰였는데, 그리스의(기원전 5세기 중엽) 시민 양성을 위한 교육을 뜻합니다. 이 교육에는 체육, 문법, 수사학, 음악, 수학, 지리학, 자연사, 철학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특히 그리스 사람들은 독특하게도 완전한 정신과 완전한 육체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체육은 우리의 몸을 완전하게 만드는 것이라 믿어, 현재 올림픽 종목인 육상은 그 당시 귀족들이 일상생활에서 하던 운동과 같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파이데이아는 로마 시대로 오면서 '후마니타스'로 변합니다. 로마의(기원전 55년) 웅변가 양성을 위해 만든 교육으로, 처음으로 웅변가에 대한 양성 프로그램이 생긴 것이지요. 여기서는 7개의 자유 인문학을 가르쳤습니다. 이 과목들은 지금 인문학의 개념보다 훨씬 폭넓은 개념입니다. 당시의 교육 과정을 통칭하여서 각파이데이아, 후마니타스라 부른 것이지요.

 

 

 

서양이 이랬다면 동양에서도 이와 비슷한 수준의 교육 과정을 진행했습니다. 중국을 예로 들면 바로 사서삼경이나 사서오경입니다. 아시아에서도 학자들이 기본적으로 배워야하는 학문들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넘어가 르네상스 시대로 가면 오늘날과 유사한 개념의 인문학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스 로마시대와 르네상스 시대 이 사이를 중세시대라고 합니다. 이 중세시대는 기독교가 지배하던 시절이죠. 이때는 신, 즉 하나님을 중심으로 생각하던 시대였고 신학이 학문의 중심이었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간을 중심으로 두는 학문들의 욕망이 서서히 들어났고, 그리스 로마시대의 정신을 되살리자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리스 로마 시대의 고전들을 다시 부활시키게 되고 그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되새겨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역할을 15세기 이탈리아 인문학자들이 주도한 것입니다. '스튜디아 후마니타스'가 탄생한 것이죠. '스튜디아'는 영어로 'Study'이므로 인간에 대한 연구, 인간성에 대한 연구를 뜻합니다. 신학에 대한 대립적 개념으로 인간과 고전에 대한 연구를 말합니다. 특히 인간에 대한 학문은 교양에 대한 것, 인간의 정신을 고귀하고 완전하게 하는 학문이지요.

 

 

 

 

19세기에는 이런 고전학에 대한 연구가 확대되면서 자연학과 차별화된 인문학으로 규정되기 시작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인문학을 구분할 때에 자연학과 대비되도록 구분하는데, 이게 바로 19세기의 특징입니다. 그 까닭은 17세기부터 자연과학이 굉장히 발전하면서 학문적인 독자성을 가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아마 우리가 떠올리는 갈릴레오나 뉴턴 같이 유명한 과학자들이 생각해보면 이 시기의 위인들이 많습니다.

근데 이 과학의 발전이 19세기가 되면서 아주 비학적인 발전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날처럼 자연과학이 그냥 '과학'이라 불릴 만큼 학문 중에서도 으뜸이 되었습니다. 자연과학의 발달은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이제 인간에 대한 고민을 과학적으로도 설명을 하게 됩니다. 이 자연과학이 인간에 대한 학문으로까지 범위를 넓히는 것에 대해서 19세기 학자들이 정신과학을 거론할 정도로 자연과학의 위세가 아주 대단해졌습니다. 이런 자연과학의 놀라운 발달에 대비해서, 인간에 대한 학문이 자연과학으로, 더 넓은 의미에서는 인문학이란 의미를 쓰여지게 됩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구분하는 것은 바로 방법적 요인에 있습니다.

자연과학은 주로 경험적인 접근으로 쓰입니다. 실험과 관찰을 말해주는 이 경험적 접근은 자연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들을 원인과 결과의 관계, 즉 인과적 관계로 파악합니다. 여기서 문제는, 인간은 자연과학으로만 다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지요. 자연과학은 인간의 의도나 목적과는 관계없이 세계와 자연현상을 객관적으로 검사하고, 관찰하고, 조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설명'한다기 보단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이해'의 방법은 자연과학에서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 방법이지요.

 

물론 사회과학도 인문학과 중첩된 부분이 아주 많습니다.

역사학, 인류학, 의사소통 이론, 지리, 문학,. 법률, 언어학 같은 영역들이 사회과학 영역이기도 하지만 주로 사실적이고 경험적인 인문학적 방법으로 다루게 될 때 인문학으로 분류하게 됩니다.

 

 

 

 

인문학이 중요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길에 핀 한 송이의 꽃을 보고도 감탄을 할 줄 압니다. 이 감탄은 예술적 감탄일 수도 있고 시적 감탄일 수도 있고 또철학적 감탄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과학적 감탄을 할 수도 있겠죠. 얼마든지 작은 사물 하나에서도 의미를 걸러내는 것이 인간의 정신 활동이지요. 자연과학적으로 보면 식물의 생물학적인 형태로 볼 수도 있지만,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이 의미있고 새롭습니다. 또 볼 때마다 달라집니다. 꽃 한 송이에서 생명을 느끼고 거기서 누님의 얼굴을 기억해내는 시인도 있지요. 존재의 의미까지 확대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정신입니다. 죽은 돌멩이에게 까지 숨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이 인문학적 태도라고나 할까요? 이렇게 인문적 태도는 인간의 정신을 확장시킵니다.

 

 

 

 

인문학은 또 우리에게 자기 반성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비판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보다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은 인문학적 정신에서 나옵니다. 왜냐하면 인문학은 인간의 삶과 행동을 '가치'라는 관점에서 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현대 사회를 '물질 만능 주의 시대'라고 합니다. 모든 것을 돈과 결부시켜서 생각하기 때문에 '배금주의 시대'라고도 합니다. 물질을 얻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니까 돈을 향해 나아가지요. 그런데 이걸 돌이켜 보면 무언가 잘못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느끼게 됩니다. 물질이라는 건 우리 삶의 수단인데, 어느 날 갑자기 우리의 목표가 되고 말았습니다. 과연 우리가 물질을 목표로 하고 사는 삶이 인간적인가? 사람의 삶이 이래도 되는가? 하면서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려 합니다.

맹목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삶을 보면, 그저 살아남기 위한 약육강식의 밀림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인문학적인 눈으로 보면, 인간은 서로 평등하고 자유로운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함께 공동으로 살면서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해주고 문화적인 삶을 향유하는 존재로 볼 수 있습니다. 인문학은 기본적으로 창조와 비판, 논리와 수사학이란 방법을 갖고 인간과 인간사회, 그리고 인간이 이룩해 놓은 문화와 사상에 대해 분석하고 비판하면서 또 새로운 인간관, 새로운 문화, 새로운 예술을 창조해 나갑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보면 생활이라는 관점에서 인문학은 유용성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특히 오늘 날 기술시대, 물질시대에서 보면 인문학은 별 쓸모없는 학문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인문학이 광범위한 위기에 처했다고 말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인문학의 기능적 중요성을 살펴보면, 우리 삶의 도처에서 그 기능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산업 분야에서 말이지요.

예를 들어 '건축'은 단지 건축물에 대한 유용성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문화도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건물은 그 디자인에서 부터 우리 삶을 들어내는 역할을 해주죠.

그리고 오늘 날처럼 지식이 분할되고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려면 통찰력이 필요한데, 세상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판단할 수 있는 비판력과 통찰력은 결국 인문학적 훈련을 통해서 강화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활용한 창조경제 역시 철학과 출신 스티븐잡스가 만든 아이폰을 떠올리면 알 수 있습니다. 기술과 교양, 인문학의 결합이 아이디어의 원천이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요즘에는 과학 기술들이 각자 영역에서 연구하지 않습니다. '학문 간의 융합'이란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어느 한 분야가 아닌, 전 분야를 결합해서 연구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데 넓은 의미에서는 '인문학과의 결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문화산업' 역시 인문학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K-POP, 게임, 영화, 드라마 등 고전에서 얻은 '스토리'로 새로운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는 것이지요. 이렇다 보니, 교육이나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인문학을 꽤 강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지금 인문학은 위기를 넘어서서 새로운 장을 펼치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관심이 상품적 가치로 남용되지 않기를 바라며, 인문학이 우리의 삶 속에 어떻게 반영되어 왔는지 살펴본다면 인문학의 유용성을 더욱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다른 학문과 어떤 조화를 이룰지 앞으로도 'TV인문학 특강' 많은 관심과 시청 바랍니다. Bye